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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를 아는 누나한테 홀린 썰 푼다

blackhole 2022-11-13 13:25:10

때는 바야흐로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 시절, 지금으로부터 무려 약 6년 전이었음. 충무로역 3번 출구쪽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횡단보도 건너는데 여자 두 명 중 한 명이 말을 걸더라.



 



"지나가던 귀인이 팔자 고친다고, 머리 자르고 집에 가시는 길에 얘기 한 번만 들어 주세요."



 



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정확하게 기억함. 그도 그럴 것이, 그 여자가 말을 건 곳은 충무로역 1번 출구에서 신한은행을 지나야 하는 횡단보도인 만큼, 내가 머리를 자른 반대쪽 출구와는 100미터도 넘게 떨어져 있기 때문에 내가 머리를 자른 것을 알 턱이 없었음. 내가 머리 자른 거 어떻게 알았는지 물어보니까 자기는 신내림 받아서 다 안다고 함. (이때 도망갔어야 했음) 그러고는 따뜻한 차라도 마시면서 얘기하자 ㅇㅈㄹ하고 설빙으로 쳐데려가길래 뭐하는 년인가 싶었는데 그날 설빙에서 따뜻한 커피랑 라떼 파는지 처음 알았다 ㅋㅋ 그리고 조용한 곳에서 얘기해야 된다면서 뭔 설빙을 가길래 뭐지 했는데 그 설빙이 2층, 3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2층에 사람 꽉차있어서 3층에도 사람 많을 줄 알았는데 우리가 올라가니까 짜고 친 것마냥 귀신같이 있던 사람들 다 나가더라. 올라가고 딱 여자 한 명이 이렇게 말 함



 



"자, 이제 아무도 없죠?"



 



나는 무슨 몰카인 줄 알았음. 어쨌든 창가쪽에 자리 잡고 앉았는데 밖에서는 어두워서 제대로 못 봤는데 그 여자 얼굴 보니까 좀 귀엽게 생김. 얼굴도 동글동글하고 머리는 그냥 단정하게 뒤로 묶었는데 눈이 좀 크고 진짜 구라 안 치고 눈동자 하늘색이었음. ㄹㅇ 내가 홀려서 그렇게 보였는지 렌즈를 낀 건지 모르겠지만 다까고 하늘색으로 보였음 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빠져드는 느낌이었음 계속 보고 있으면 큰일나겠다? 이런 느낌. 옆에 있는 여자는 솔직히 키 ㅈㄴ크고 못생겨서 걍 언급 안함 실제로 말도 거의 안 했음 나중에 알고 보니까 사람 꼬시는 일 배우는 사람이더라.



 



일단 얘네가 하는 얘기 대충 들어보면 이럼. 사람마다 팔자라는 게 있는데 나는 그 팔자가 막혀 있어서 뚫어줘야 된다고 함. 그 이유는 조상님들이 돌아가시면 하늘로 가든 땅으로 가든 어느 한 쪽으로 가셔야 하는데 현생에 미련이 남아서 중천이라는 곳에 떠돌고 있다더라. 그래서 제사를 지내서 조상님들의 한을 풀어줘야 내 팔자가 풀린다더라. 그리고 계속 나에 대한 걸 떠보는데 처음에 뭐 흔한 성격 얘기, 과거 얘기 하면서 (상처 잘 받죠, 겉으론 쎈데 속으론 여리죠 이지랄함 당연히 다 맞음 ㅇㅇ) 형이 두 명 있냐고 물어보더라. 그래서 난 형 한 명밖에 없다고 틀렸다고 그냥 자리 뜨려고 했는데 사실 형 위에 한 명 더 있었다 이러는 거임. 근데 죽어서 아기 귀신이 되어서 나한테 붙어 있다고. 그 아기 귀신 힘이 너무 쎄서 제사 지내서 한 풀어줘야 내 팔자 풀린다면서 그럼. 근데 나 솔직히 이거 적으면서도 좀 무서움 얘네가 말에도 힘이 있다고 이런 얘기 밖에다 하면 조상님들이 노하셔서 나한테 안 좋은 일 생긴다면서 그랬는데. 그래서 뭐 장난으로라도 아 힘들어 죽겠다, 배고파 죽겠다 이런 소리 하면 안된다고 그러더라 근데 내가 이런 거 쳐 믿으니까 사이비에 홀린 거겠지? 걍 적어야겠음 ㅇㅇ



 



어쨌든 그 제사라는 걸 지내려면 터가 좋은 곳에 가야 된다고 함. 여기 충무로는 뭐 사람도 많고 도시 한복판이라 기운이 탁하고 자기들이 연신내에 터 좋은 곳 있다고 거기 가야된다함. 좀 신기해서 일단 ㅇㅋ하고 가기로 했음. 사실 장기 털리는 거 아닌가 좀 쫄았음. 여기서 존나 웃긴 게 설빙 3층에서 2층 내려가는데 계단이 ㅈㄴ좁아서 그 여자가 넘어짐. 그리고 하는 말이 뭐 나에 대한 걸 알려고 빙의를 하다보니 기운이 너무 쎄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? 이지랄함 ㅋㅋㅋㅋㅋ존나 근데 그때는 믿었음 ㅇㅇ 2층에 사람 개많았는데 나 호구로 봤을 듯



 



지하철 타고 연신내까지 가는데 이 여자가 계속 얼굴 시뻘개져가지고 막 목에다 손 갖다대고 있는 거임. 내가 어디 불편한지 물어봤는데 혹시 어머니 많이 편찮으시냐 이러더라. 몸을 반으로 나눴을 때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어쨌든 절반은 엄마, 반대쪽은 아빠인데 나한테 빙의하니까 한쪽이 너무 아프다고 그럼. 그날 몇주 전에 엄마랑 전화하면서 엄마가 뭐 혹시 자기 입원하게 되면 학교 휴학하고 병간호 해주러 올 수 있냐 이런 말 했던 적 있어서 저기에도 홀려넘어감. 사실 50대 되면 안 아픈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 듯. 



 



연신내 도착해서 버스타고 또 어디로 이동함. 근데 나한테 지금 현금으로 얼마 있냐더라. ㅅㅂ 좀 줄여서 말했어야 됐는데 6만원 있다고 사실대로 말함. 그러니까 그 옆에 있던 쩌리년이 그럼 과일 6만원치 사서 제사 지내자함. 미친년인가 싶었음. 버스 내리고 근처에 마트 가서 뭔 별의 별 과일 다 샀음. 바나나 사과 귤 배 파인애플 등등 조상님들 배터지겠노 생각하고 있는데 이년들 둘이서 빡빡하게 6만원치 채워서 골라담음. 그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아줌마도 나 존나 이상하게 쳐다보더라. 대충 사이비인 거 아는 눈치였는데 말좀 해주지 ㅅㅂ 아니면 한팬가? 어쨌든 손 양쪽으로 존나 무거운 과일 봉지 들고 어떤 건물로 들어감



 



1층은 페인트인가 칠하는 가게였고 2,3층은 간판 없는 낡은 건물이었는데 계단 올라가는데 와 2층 복도는 진짜 귀신 나올 것처럼 불 하나도 안 켜져 있고 거미줄 쳐져있고 문짝도 다 낡았더라. 그거 보면서 3층으로 올라가는데 어떤 할머니가 내려오면서 나 보고는 "어유~ 축하해요~" 이러더라. 3층 올라가니까 진짜 넓은 공간에 불 환하게 켜져있고 맨바닥에 탁자 여러개 깔려있고 정면 벽에는 예상 외로 태극기 걸려있음.ㅋㅋㅋ 그리고 한쪽 벽에는 무슨 제사 지내는 방이랑 찬송가 같은 거 부르는 방 있더라. 노래 존나 부르고 있었음. 근데 노래가 좀 이상한? 약간 소름돋는 노래였음



 



어쨌든 그 쩌리년은 과일 손질해온다 하고, 도를 아는 예쁜 누나는 나한테 교육시켜준다고 책 한 권 가져옴. 뭐 시중에도 파는 책이라면서 나한테 내용을 막 훑어주는데 여기서 ㅈㄴ 자연스럽게 아버지 이번에 교통사고 당하셨죠? 하면서 다음 내용 말하길래 내가 잠깐만요 하고 아버지 교통사고 당하신 건 어떻게 알았냐 하니까 자기는 다 안다면서 웃음. 뭐 별의별 내용이 다 있더라 심령 사진 찍힌 것들이랑 김수미가 왜 할머니 연기만 하냐하면 자기 차에 시어머니 치여서 죽어서 시어머니가 김수미 몸에 빙의해서 그런거다 등등 뭔가 말을 많이 했는데 잘 기억 안 남. 이땐 솔직히 친구들한테 단톡으로 나 10시까지 연락 없으면 경찰에 신고하라했음 여기 연신내 어디어디 페인트집 3층이라면서 ㅋㅋ



 



본격적으로 제사에 들어가기 앞서서 쩌리년이 손질해온 과일을 먹음. 무조건 한 종류씩 다 먹어야 된다더라. 왠지는 설명해줬는데 까먹음 그리고 제사를 어떻게 지내는지 설명해주더라. 일단 절하는 방법은 뭐 하늘의 기운을 모으고 땅의 기운을 모아서 절을 하는 거라면서 공중에 손 한 번 휘젓고 땅으로 휘젓고 절하는거임. 또 녹명지라고 무슨 가족 이름 적는 종이 있는데 그걸 말아서 손바닥에 올리고 태우면 원래 연기는 위로 올라가기 마련인데 그 녹명지라는 건 연기가 아래로 말려들어가서 손바닥에 노란 인장이 생긴다더라. 그리고 초를 태우면 가운데는 움푹 들어가잖아? 불때문에 녹아서 ㅇㅇ 근데 조상님들의 기운이 강할수록 초가 뾰족하게 탄다고 함.



 



어쨌든 제사 하러 무슨 두루마기 같은 거 걸치고 들어갔는데 진짜 절하느라 힘들어 뒤질 뻔했음. 계집들 두 명이 체력이 어떻게 그렇게 좋은지 힘든 내색도 안 함. 구라안치고 절 수백 번 했다. 절도 시발 가만히 서서 하는 게 아니라 좌로 2보 우로 3보 이지랄하면서 존나 함 ㅋㅋㅋ 대충 절 다 끝내고 녹명지라는 거 태우는데, 나보고 눈 감으라 하고 여자 두 명이 손 잡고 구슬픈 노래 부르면서 그거 태움. 손 보드랍드라 ㅋㅋ 그때 유일하게 기분좋았음. 태우다가 중간에 눈떠보라 하고 연기 아래로 말려들어가는 거 보여줌. 그리고 진짜 손에 노란색 동그란 인장 생김. 이거 1주일 동안 안 지워지더라 ㅅㅂ 그리고 이제 제사가 끝나서 촛불을 꺼야 된다고, 나보고 끄라고 하면서 초 모양 보여주는데 진짜 뾰족하게 탐. 가운데는 안 타고 가장자리만 타게 특수제작 한 듯. 존나 치밀함



 



어쨌든 제사 끝내고 나와서 또 추가설명 들음. 제사를 끝내고 나오니 시간은 이미 22시 넘어서, 나와서 폰 보니까 친구들 단톡에 난리났더라 뭐 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냐, 내가 경찰에 전화할게 등등 난리부르스라 난 "ㄱㄷ" 두글자만 치고 설명 들음. 폰 못 쓰게 해서 



이 좆같은 제사를 삼칠일(21일) 동안 해야된다더라. 현생의 탁한 기운을 필터처럼 거르는 과정이라 오래 걸린다 함. 여기서 걍 믿음이 떠버림. 과일 또 살 생각에 어지러워짐. 그리고 꿈이 중요하다면서 매일 아침마다 자기가 모닝콜 해준다고 함. 그럼 난 전화받고 자기한테 꿈 얘기를 해주면 자기가 조상님들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꿈을 통해서 해석해준다고 하더라. 그 이후로 뭐 여기서 있었던 일은 밖에 말하면 안 되고, 뭐 하면 안 되고 등등 규칙 듣다가 막차 끊길 것 같아서 바래다 준다고 함



 



내가 나갈 때 되니까 거기 있던 애들이 내가 사온 과일 다 나눠서 쳐먹더라. 어린 애들 존나 많았는데 안타까웠음 진짜 초등학생 한 10명 되더라 연대 1학년이라 송도 캠퍼스인데 연신내까지 제사지내러 오는 애도 있고 진짜 좀 불쌍했음. 어쨌든 무슨 태극기에 인사 드리고 태극기를 등지지 말고 뒷걸음으로 나오라 이지랄하길래 시키는 대로 함. 집 근처 도착해서 떡볶이 사가지고 옆집 동기랑 선배 불러서 같이 먹으면서 이 얘기 해주는데 선배가 정신 차리라고 뺨 때릴려고 하더라. 그날 밤새 찾아보니 대진성주회인가 대순진리교인가 어쨌든 큰 종교에서 떨어져 나온 사이비라 한 것 같음. 나랑 비슷한 일 겪었던 사람 꽤 많더라. 못 빠져나오면 돈을 다 사이비에다 갖다 바쳐서 패가망신한다고 그럼. 



 



다음날 아침에 전화오길래 걍 폰 끄고 잤음. 나중에 일어나보니까 카톡도 존나 와있길래 장문으로 그쪽 종교에 대해서 알아봤다, 거절의사 표현하는데도 계속 포교활동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 등등 내용으로 문자 보내니까 나중에 '좋게 알 방법도 있었을텐데 안타깝네요. 그냥 좋은 마음으로 빌어줄게요.' 라고 답장 오더라.



근데 솔직히 시간 ㅈㄴ 많이 지났는데 딱 종교 거르고 얼굴 한 번 다시 보고 싶다. 진짜 넘사벽으로 예쁜 게 아니라 순진하게 참하게 생겼는데 눈이 걍 빠져드는 눈동자였음 진짜 눈때문에 걍 홀린 것 같음. 아 그리고 나중에 존나 소름 돋았던 사실은 엄마한테 물어보니까 형 낳기 전에 유산했었다더라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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